아이가 자꾸 흘러 내린다
아이가 자꾸 흘러 내린다
박해람
잠든 아이를 등에 업고 서성거린다
아이가 자꾸 흘러내린다
이 불안한 직선의 침실에서 아이는
깨어날 때까지 여정히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나도 내 등을 내려놓고 떠날 것이다
잠에서 깬 아이의 가슴에
굽은 등 하나가 무겁게 붙어 있겠지
때가 되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들일지라도
흔적은 남는 법이다
나는 아직 아버지의 등에서 잠들었던 기억 중이다
언제 내가 아버지의 등에서 흘러내렸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아버지의 등과 내 가슴팍이 서로
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든 내가 가끔 아버지의 등을 보는 날들도 있다
맞붙은 것들은 다 상처의 후생들
그것이 떨어질 때 서로가 아픈 것처럼
언젠가 딸아이의 아픔이 될 나와
나의 아픔이 된 아버지가 지금도 서로 붙어 있다
이렇듯 가족이란 상처의 제 짝이다
서로 엉겨 붙어 한 시절 아물어 가는 상처의 짝
등에 붙어 있는 이 상처의 딱지
누가 먼저 아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 가는 사내>,랜덤하우스코리아,2006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적 저의 어머니는 늘 동생들을 업고 일을 하셨고 그 흔적으로 지금 약간 등이 굽어 계십니다.
제가 여덟살때 귀한 여동생이 태어나고 이어 이년 터울씩 동생 둘이 더 태어났습니다...
늦게 태어난 동생들은 모두 제등에서 자고 저와 함께 고무줄 뛰기를 하며 온 동네를 쏘다녔지요..
제 등은 동생들의 놀이터이자 침실이었을 겁니다...
결혼을 하고 내 아이들을 업으며 더 단단히 메고 싸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두던 포데기는 지금 장롱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습니다....잠들었다 싶어 살짝 등에서 떼어 눕히기라도 하면 어떻게 알고 울던 딸아이는 이제 사춘기 소녀가 되었네요...
떼어내지 않으면 안될 발버둥치며 흘러 내리는 불안을 서로가 의지하며 애써 붙잡고 있었던건 가족이기 때문 일까요....
언제나 든든한 바람벽 같던 아버지를 가슴에서 떼어낸 상처가 쓰립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장 멀게만 느꼈던 아버지,
나를 꼭 닮은 타인들이 바로 가족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등에 붙어 있는 서로의 상처의 딱지를 안아주고 치유할 수 있는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족,
아플 수록 더 사랑하고 힘들 수록 더 안아줘야 하는 것이 가족 이겠지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밑 바닥에서 저려오는 아픔은 제가 부모님의 등에서 떨어진 흔적이기 때문이겠지요.......